2화 – 지옥의 첫날부터 학생부 경기대표 보디빌딩 선수가 되기까지
중학교 2학년 겨울,
나는 처음으로 고등학교 보디빌딩 특기부 훈련장에 들어갔다.
내 몸무게는 고작 55kg 남짓.
근육도 없고, 체지방도 없는 그야말로 말라깽이였지만
딱 하나, **“운동으로 인생을 바꾸겠다”**는 결심만은 단단했다.
훈련장의 문을 열자마자 풍겨온 건 땀 냄새, 쇠 냄새, 쉐이크 냄새,
그리고 기합소리, 고함, 포효.
기계는 쿵쾅대고, 누군가는 바닥에 드러누워 헐떡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바로 훈련에 투입됐다.
그 첫 세트가 바로 벤치프레스 100kg.
그게 나한테는 얼마나 황당한 숫자였냐면,
그때 나는 60kg도 안 되는 몸으로 40kg도 간신히 들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00kg을 들어올리라고?
당연히 한 개도 안 올라갔다.
하지만 여기서는 못 들면 끝이 아니었다.
코치님은 딱 한 마디만 하셨다.
“12개 해.”
못하면?
못하면 될 때까지.
뒤에 있던 고3 형이 강제로 내 팔을 끌어올리며 보조를 해줬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버티고,
형은 힘으로 억지로 올리고,
그러다 팔이 풀리면 윽윽대며 쳐들고.
12개를 억지로 끝내자
코치님이 말한다.
“폼 틀렸어. 다시.”
그래서 또 12개.
또 12개.
또 12개.
계속.
계속.
계속.
나는 결국 2시간을 그 100kg 벤치프레스에 붙잡혀 있었다.
한 개도 스스로 들지 못하면서
보조 형의 팔힘을 빌려서라도
12개를 채우기 위해,
코치님의 "다시!"라는 한마디에
2시간 동안, 200~300회를 벤치에서 죽어라 반복했다.
팔이 끊어진 것 같았다.
가슴은 멍이 들었고,
호흡은 터질 것 같았다.
눈앞이 뿌예지고,
입에선 “으아악!!”
이런 괴성이 나왔다.
그날 밤,
팔을 씻으려고 수돗물을 틀었는데
팔을 뻗는 동작조차 안 돼서 머리를 박은 채로 울었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을까."
그때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 날은 더 무서운 게 기다리고 있었다.
파워 레그프레스.
첫 세트가 360kg.
그냥 시작이 그랬다.
양쪽에 20kg 원판 9장씩 꽂혀 있었고,
20개씩 6세트를 하면서
세트마다 80kg씩 중량을 올려야 했다.
1세트: 360kg
2세트: 440kg
3세트: 520kg
4세트: 600kg
5세트: 680kg
6세트: 760kg
중량이 올라갈수록 보조 인원도 늘어났다.
마지막 760kg 세트에는
보조 3명이 붙어서 함께 밀어줬다.
한 명은 내 다리 위에 올라타고,
양옆에서 두 명이 기계의 손잡이를 붙잡고 밀어주며
나는 소리를 지르며 “존재만” 했다.
그게 내 역할이었다.
근육이 아니라 정신으로 드는 중량.
혼절 직전의 눈빛으로 20개를 맞췄다.
이 모든 게 고등학교 입학 전의 예비 훈련이었다.
정식 입학 후엔
오전 수업, 오후 훈련, 저녁 포징, 새벽 유산소
이게 3년 내내 일상이었다.
놀 시간? 없다.
연애? 꿈도 못 꾼다.
아파도 운동, 피곤해도 운동.
심지어 종아리에 쥐가 나서 움직이지 못한 날에도
“쥐난 쪽 빼고 나머지라도 하자”는 게 코치님의 철학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만이
경기도 대표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고1 때부터 경기도 보디빌딩 학생부 대표로 활동했다.
그리고,
중3 겨울,
나는 고등부 대회에 출전했다.
진짜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싸워
경기도 대회 3위에 입상했다.
그 순간,
지옥 같던 훈련의 기억이
모두 눈물로 터졌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 트로피는,
내 인생 최초의
자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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