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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 전국대회 5위로 학생부를 끝내다

제4화 - 전국대회 5위로 학생부를 끝내다

2004년, 고3.
나는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다.
휘청이고, 망설이고, 뒤돌았던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 돌아왔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고2 때의 나는 무너져 있었다.
몸도 마음도 다 놓아버렸고, 사람들도 나를 포기했다.
다만 몸 어딘가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다시 해야 한다”는 불씨 하나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냥 툭—하고 그 불씨를 붙잡았다.
그래서 다시 선수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전처럼.

복귀하자마자, 훈련은 지옥 그 자체였다.
쉬었던 시간만큼 몸은 둔해졌고, 근육은 퇴화했다.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는 순간마다 내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무거웠던 웨이트보다 더 무거웠던 건,
"과거의 나보다 못한 지금의 나"였다.
그러니까 더 죽어라 했다.
머리로, 근육으로, 악으로 버티며.

첫 복귀 무대는 ‘미스터경기 학생부 -70kg급’이었다.
결과는 3위.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내가 운동을 놓았던 몇 개월 사이, 다른 선수들은 꾸준히 훈련을 이어왔을 거다.
그걸 생각하면 3위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
하지만 난 속이 쓰렸다.
‘나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다음엔 ‘미스터 수원 -70kg급’ 대회.
이때는 진짜 독기 품었다.
복귀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고,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조명 아래에서 "나 돌아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결과는 1위.
내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온몸이 찌릿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이 맛에 선수 한다는 걸.

그리고 마지막.
학생부 경력의 종지부를 찍는 전국대회.
‘미스터 YMCA -65kg급’.
고등부 최고의 무대였다.
그 무대에 오르기 위해, 나는 몸을 깎았다.
80kg이 넘던 체중을 65kg까지.
먹는 걸 조절하는 게 아니라, 거의 안 먹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가끔은 어지러워 주저앉기도 했다.
체지방을 5% 이하로 만들면서도 근육은 최대한 유지해야 했고,
포징 연습을 하면서 종종 눈물이 났다.
정말 아팠다.
그냥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자존심이 아팠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수없이 들면서도,
그만두면 더 아플 걸 알기에 계속했다.

무대에 올랐다.
조명 아래에서, 수많은 시선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다.
근육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포징을 잡았다.
무릎이 살짝 떨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절대 티내지 않았다.
결과는 5위.
전국 단위 대회에서 얻은 첫 수상이었다.

1등은 아니었다.
트로피도 없었고, 상금도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 5위는
단순한 등수가 아니라
“너 아직 끝난 거 아니다”라는 인생의 메시지였다.

그 대회를 끝으로 학생부 선수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버지는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술은 드셨지만,
어느새 일도 다니기 시작하셨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뒷모습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우리 가족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전국대회 5위는 내 인생의 마지막 대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보디빌딩은, 나를 살렸다.
내 몸을 만들었고, 내 정신을 다졌고, 내 삶을 다시 끌어올렸다.

이제 학생부는 끝났고,
다음은 세상과 진짜 싸우는 일이 남았다.
스무 살,
현실이라는 이름의 무대 위로 올라가는 준비가 시작됐다.